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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야구 큰별이 졌습니다.

간암으로 별세한 故 장효조 전 삼성 2군감독이 별세한지 채 1주일만에 '무쇠팔 투수' 최동원이 직장암 전이로 별세했습니다.

2006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을 거쳐 2009년부터 2년간 한국야구위원회 경기감독관을 맡았던 것을 끝으로 야구와의 인연은 잠시 끊었습니다.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은 최고시속 150km를 웃도는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로 국내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습니다.

특히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에 등판해 혼자 4승을 거둔 국내 유일한 선수입니다.

1983년 롯데 입단 이후 1988년까지 명실상부한 롯데에이스로 활약했던 최동원은 1988년 프로야구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 삼성으로 트레이드돼 1990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최동원은 지난 7월 22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레전드 리매치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최동원은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동문들의 잔치에 나타났지만 기자들에게 병에 대해선 함구해 줄것을 부탁했습니다.


병이 호전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는 복수가 찬듯 많이 불러 있었고 처음에는 사실 최동원인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최동원은 그라운드를 밟지 않았습니다.

벤치를 지키며 모교인 경남고의 선전을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많이 좋아졌다. 다음에는 꼭 마운드에 서겠다”고 밝혔고 이는 공식석상에서 내놓은 마지막 말이 됐습니다.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는 이미 많은 기자들이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빈소에 설치된 영정은 주먹을 불끈쥐고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이 한장 더 세워져 보는이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3명의 아들중 장남인 최동원의 막내 동생은 KBO 최수원 심판입니다.

최수원 심판은 “투병생활이 길어 형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기피했다”면서도 “군산상고와의 레전드 경기에 참석한 건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강한 의지로 다시 마운드를 밟을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빈소가 차려진 오후에는 NC 다이노스 김택진 구단주와 김경문 감독이 나란히 빈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기자들과의 짧은 인터뷰에서 김택진 구단주는 눈물을 보일 정도로 고인의 타계를 아쉬워했습니다.




뒤이어 3시쯤에 선동열 전 감독이 왔습니다.

빈소에 들어서며 최동원의 밝은 모습의 사진을 바라보는군요.




침통한 표정으로 조문을 마친 선돌열 전 감독이 빈소를 나오고 있습니다.


최동원의 어머니 김경자씨와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국보급 투수 최동원과 선돌열의 맞대결은 현역시절 3차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1986년 4월 1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해태 송일섭에게 솔로홈런을 허용며 패했습니다.

두번째는 같은 해 8월 19일 사직구장에서 최동원이 2대 0으로 승리했습니다.

당시 한 신문은 “완봉하는 순간, 마지막 공을 던졌던 최(崔)는 기쁜 나머지 84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보다도 더 신나게 양팔을 흔들고 동료와 얼싸 안았는데 그 모양이 많은 팬에겐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썼다고 합니다.

마지막 대결은 다음해 5월 16일 사직구장에서 연장 15회까지 가는 4시간 56분간 숨 막히는 투수전을 펼쳤지만 2대2 무승부였습니다.

세번째 대결은 배우 조승우가 최동원 역을 양동근이 선동열 역을 맡아 ‘퍼펙트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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